프랑스 화가 ,일레르-제르맹-에드가 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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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언제나 빛의 도시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모든 빛은, 필연적으로 그림자를 데리고 옵니다.

19세기 말의 파리.
오페라 극장의 샹들리에는 밤마다 황금빛으로 흔들렸고,
거리의 카페에는 예술가와 귀족, 방랑자와 몽상가들이 뒤섞여 앉아 있었습니다.

도시는 찬란했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천천히 침잠해 가는 고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화가는,
그 누구보다 먼저 그 침묵의 결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에드가 드가.

우리는 흔히 드가를
‘발레리나를 그린 화가’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가 평생 응시했던 것은
무대 위의 환희가 아니라,
무대가 끝난 뒤 찾아오는 적막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선은
1876년, 한 작품 안에서 극적으로 응축됩니다.

압생트.

처음 이 그림을 마주하면
별다른 사건은 보이지 않습니다.

카페.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초록빛 압생트 한 잔.

그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그 그림 앞에서 오래 멈춰 서게 됩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아마,
이 그림 속 인물들이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일 겁니다.

여인의 눈빛은 텅 비어 있습니다.

시선은 어딘가를 향해 있지만
정작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 듯합니다.

남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교감도 흐르지 않습니다.

그 거리는
단순한 물리적 간격이 아닙니다.

드가는 이 작품 안에
‘함께 있으면서도 끝내 닿지 못하는 인간’을 그려 넣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그림이 철저히 계산된 연출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드가는 실제 모델을 불러
배우처럼 자리를 배치했습니다.

여인의 위치.
남자의 시선.
테이블의 각도.
유리잔이 놓인 거리까지.

그는 마치 영화감독처럼 장면을 설계했습니다.

당시 회화에서는 매우 낯선 방식이었죠.

왜냐하면 이전 시대의 그림들은
인물을 정중앙에 배치하며 안정과 조화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드가는 일부러 균형을 무너뜨립니다.

화면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고,
인물은 어딘가 잘려 나간 듯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불완전함이
이 그림 전체에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 냅니다.

오늘날 많은 평론가들이 말합니다.

“드가는 회화 안에
현대 영화의 시선을 가장 먼저 들여온 화가였다.”

실제로 《압생트》를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는 감상자가 아니라
어느 카페 구석에서 우연히 그 장면을 훔쳐보는 목격자가 됩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

바로 압생트입니다.

19세기 유럽 예술가들 사이에서 압생트는
단순한 술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몽환과 퇴폐,
예술과 파멸을 동시에 상징하던 시대의 액체였습니다.

초록빛 잔 안에는
당대 파리의 욕망과 피로가 함께 녹아 있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사람들은 압생트를 두고
“영혼을 잠시 빛나게 하지만 결국 인간을 잠식하는 술”이라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드가는
취기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가 바라본 것은
술을 마시고 난 뒤 인간에게 남겨지는 공허였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술에 대한 작품이라기보다,
도시에 대한 초상에 가깝습니다.

화려하지만 고독한 도시.

사람들 틈에 섞여 있지만
끝내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는 인간.

드가는 그 시대의 파리를
한 잔의 압생트 안에 응축해 버린 것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의 반응입니다.

사람들은 불편해했습니다.

너무 우울하다고 말했고,
너무 냉소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특히 영국 평단은 이 작품을 두고
“프랑스 사회의 타락을 드러낸 그림”이라 평가하기도 했죠.

하지만 세월은 늘 예술의 편이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평론가들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제 사람들은 《압생트》를
단순한 풍속화가 아니라
‘현대인의 내면을 최초로 포착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보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드가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외로움 또한 정교해진다는 사실을.

그리고 놀랍게도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이 그림 속에 남아 있습니다.

카페에 앉아 서로를 마주하지만
각자의 화면 속으로 침잠해 가는 사람들.

수많은 관계 속에서도
문득 설명할 수 없는 공허를 느끼는 밤들.

드가는 그것을 너무 일찍 발견해 버린 화가였습니다.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압생트》 앞에서 오래 머물게 되는 이유는.

그 그림이 단순히 한 시대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라,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근원적인 쓸쓸함을 건드리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리고 에드가 드가는
그 침묵의 표정을, 누구보다 우아하게 그려낼 줄 알았던 화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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