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박자 늦은 마음들이 건네는 가장 인간적인 위로”
✍ 작가 소개
윤성희는 한국 문단에서 ‘조용하지만 단단한 문장’을 써 내려가는 소설가로 평가받는다. 화려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을 앞세우기보다, 일상의 틈과 사람의 마음결을 세심하게 포착하는 데 탁월하다.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은 대체로 크게 성공하지도, 크게 실패하지도 않는다. 대신 흔들리고, 망설이고, 조금 늦게 도착한다.
윤성희의 작품 세계는 속도를 미덕으로 삼는 사회에 대한 은근한 반문이다. 빨리 결론에 도달하지 않고, 쉽게 판단하지 않으며, 인물의 마음이 이동하는 시간을 끝까지 따라간다. 『느리게 가는 마음』은 그런 작가적 태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소설집으로, 삶의 리듬이 어긋난 사람들, 한 박자 늦은 선택을 하는 인물들을 통해 “느림이야말로 인간적인 속도”임을 말한다.

핵심 서평
『느리게 가는 마음』은 제목 그대로, 삶의 속도를 늦추어 바라보는 소설집이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대단한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아주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망설임, 말하지 못한 마음, 뒤늦게 깨닫는 감정—을 중심에 둔다.
윤성희의 인물들은 대부분 현재의 자리에서 확신이 없다. 누군가는 관계의 끝에서, 누군가는 삶의 중간에서 멈춰 서 있다. 그러나 이 멈춤은 실패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이동’이다. 작가는 인물들이 빨리 결론에 도달하도록 밀어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천천히 돌아가고, 한참을 헤매게 두며, 그 과정에서 생기는 미묘한 감정의 결을 놓치지 않는다.
이 소설집의 문장은 과장되지 않고 담백하다. 감정을 크게 설명하지 않지만, 독자는 인물의 마음을 또렷이 느끼게 된다. 그것은 윤성희 특유의 절제된 서술 덕분이다. 말하지 않는 여백, 설명되지 않은 감정이 오히려 독자의 경험과 맞닿으며 깊은 공감을 만들어낸다.
『느리게 가는 마음』은 ‘빨리 정리되지 않는 감정’을 존중하는 소설이다. 상처는 단번에 치유되지 않고, 관계는 명쾌하게 끝나지 않으며, 삶은 종종 예상보다 더디게 나아간다. 이 책은 그 더딤을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천천히 가는 마음이야말로,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일 수 있다고 조용히 말한다.

책 속으로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딸이 만들어준 호박죽을 먹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할머니는 죽을 얼마 먹지 못했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그만 애쓸란다, 하고. 성규는 할머니가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나는 그만 먹을란다,라고 말했다고. “내가 분명히 들었어. 너무 이상한 말이라 기억한다니까.” 내가 우기자 성규가 대답 대신 휘파람을 불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노래였다. 한참 후에 성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만 애쓴다니. 그건 너무 슬픈 말이네.”(「마법사들」 28면)
이모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작년에 고등학교 동창들이랑 여행을 갔는데 거기에 느리게 가는 우체통이 있었다는 것. 이모는 땀구멍에게 엽서를 썼다는 것. 거기에 결혼하자는 내용을 적었다는 것. 느리게 가는 우체통 속 엽서는 일년 후 배달이 되는데 그게 다음 달이라는 것. 사실 땀구멍이 얼마 전에 결혼을 했는데 엽서에 적은 그 주소에 계속 살고 있다는 것. 이모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요약하면, 그러니까 그 엽서를 찾으러 가야 하는데 혼자 갈 자신이 없으니 나보고 같이 가달라는 거였다.(「느리게 가는 마음」 83면)
엄마와 나는 즐거울 때는 같이 웃었지만 슬플 때는 서로 모른 척했다. 위로를 해주지 않는 엄마에게 가끔 상처를 받기도 했다. 엄마도 나에게 상처를 받았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엄마의 슬픔을 알아차린 적이 거의 없었다. 엄마는 들키지 않았으니까. 나는 엄마가 실컷 울 수 있도록 가게 밖으로 나왔다. 어렸을 때 나는 눈물샘이 자주 막혔다. 슬픈 일이 생기면 그때의 내 사진을 보았다. 눈이 붓고 눈곱이 낀 아기.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아기. 다시 눈물샘이 막힌 아기가 된 기분이었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흐르지 않는 아기. 나는 계단에 앉아서 눈을 맞았다. 내 몸을 그대로 통과하는 눈을. 눈이 펑펑 내렸다. 쌓인 눈을 보자 내가 죽은 게 어제 일처럼 느껴졌다.(「자장가」 122~23면)
아이들의 말을 듣자 갑자기 어떤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내가 중학생 때였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봤는데 맞은편 옥상에서 빨래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 빨래는 전날에도 있었고 전전날에도 있었다. 사흘이나 걷어가지 않은 빨래라니. 갑자기 슬퍼졌다. 온몸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조금만 움직이면 눈물이 쏟아져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용기를 내 엄마한테 말했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말할 수 없다고. 나조차도 설명할 수 없다고. 그랬더니 엄마가 말했다. “괜찮아. 그런 날이 있지.” 그때 그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길가에 쪼그려 앉아 울었다.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웃는 돌」 164면)
산책로를 맨발로 걷는 사람을 구경했다. 산책로를 거꾸로 걷는 사람도 구경했다. 아주 느리게 걷는 노부부도 구경했다. 노부부의 발걸음에 맞춰 숨을 쉬어보니 천천히 흘러가는 세상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지금 재생 속도는 0.25배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의 부장님은 유튜브 영상 속도를 1.5배로 설정하고 보았다. 주로 주식에 관한 영상을 보았는데, 말이 빨라지면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더 집중을 하게 된다고 했다. 스키를 탄다는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징그럽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았다. 저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왔다. 갑자기 등이 시려왔다. 봄볕은 따뜻했고 나무마다 꽃망울이 맺혀 있었다. 문득 내가 지금 추운 게 아니라 외로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의 외로움이 내게로 옮겨올까봐 나는 얼른 엄지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입바람을 불었다. 그러자 다시 세상이 보통의 속도로 재생되었다.(「보통의 속도」 249면)

론평 – 감성을 건드리는 읽기
이 소설집을 읽으며 가장 오래 남는 감정은 ‘안도감’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에서 잠시 벗어나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는 느낌 때문이다. 우리는 늘 빨리 결정하고, 빨리 회복하고, 빨리 다음 단계로 가야 한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윤성희의 소설은 묻는다. 정말 그렇게까지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느리게 가는 마음』 속 인물들은 남들보다 조금 늦다. 그러나 그 늦음은 무능이 아니라 성찰에 가깝다. 이들은 쉽게 단정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통과시킨 뒤에야 한 발을 내딛는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는 자신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아직 결론 내리지 못한 관계, 미뤄둔 선택, 명확하지 않은 마음들.
윤성희의 소설은 위로를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 그대로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은근히 건넨다. 이 은근함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감정이 격해지지 않기에 오래 남고, 조용하기에 반복해서 떠오른다.
이 책은 빠르게 소비되는 이야기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한 편을 읽고 나면 잠시 멈추게 되고, 다음 이야기를 바로 넘기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독자의 독서 속도마저 느리게 만든다. 그 점에서 『느리게 가는 마음』은 단순한 소설집이 아니라, 읽는 이의 삶의 리듬을 조정하는 책이다.
“삶이 느려질수록 마음은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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