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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를 숨기고, 갑옷을 꺼내 입히고, 피 속에서 왕좌를 세운 여인.그러나 그 왕좌의 주인은 그녀의 오라버니 넷을 차례로 죽였다.사랑과 배신, 권력과 눈물 — 민씨의 56년. 출생 1365년 혼인 1382 년 왕비책봉 1400 년 승하 1420 년 고려 최고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다탄생과 유년 · 1365년, 송경 철동 1365년 음력 7월, 고려 개경(송경)의 철동(鐵洞)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여흥부원군 민제(閔霽) — 고려 최고의 권문세족 중 하나인 여흥 민씨의 당주. 어머니는 삼한국대부인 여산 송씨. 그 집 셋째 딸이었다.여흥 민씨는 고려 중기부터 대대로 과거 급제자를 쏟아낸 가문이었다. 아버지 민제는 충혜왕 왕비 희비 윤씨의 외사촌, 충정왕과는 6..
조선 최초의 왕비 · 신덕왕후강씨의 생애 神德王后 康氏역성혁명의 동지였으나 왕의 그늘에 가려졌고,죽어서도 지워진 여인 — 조선의 첫 왕비, 그 온전한 이야기1356 — 1396 고려의 마지막 봄에 태어나다탄생 · 1356년, 곡산1356년, 고려 충혜왕의 치세가 남긴 풍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황해도 곡산 땅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상산부원군 강윤성(康允成), 문하찬성사를 지낸 권문세족의 당주였다. 어머니는 진주 강씨. 두 명문가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는 곡산 강씨의 자랑이었다.그 이름은 역사에 남지 않았다. 우리는 그녀를 오직 '강씨(康氏)'라고만 부른다. 왕후가 되어서도 그녀 자신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다. 죽어서야 얻은 시호가 신덕(神德)이었다. 살아있는 동안은 그냥 '강씨'였다.곡산의 봄날..
그림자 속에 핀 불꽃, 조선의 첫 번째 여인 '신의왕후 한씨'의 못다 한 이야기조선 왕조 500년의 서막을 연 태조 이방원과 그의 형제들. 그 위대한 아들들을 낳아 기르고, 변방의 무장 이성계를 왕의 재목으로 내조했던 여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조선이 건국되기도 전, 남편의 등극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아야 했던 비운의 여인. 오늘은 조선의 첫 번째 왕비이자, '그림자 국모'로 불리는 신의왕후 한씨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해 봅니다. 1. 거친 북방의 바람이 키운 명문가의 딸때는 고려 말, 공민왕의 개혁이 요동치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의 함경남도 안변 지역은 동북면이라 불리며 원나라와 고려의 세력이 교차하던 거친 변방이었습니다. 이곳의 유력한 명문가였던 안변 한씨 가문에서 한씨 여인이 태어났습니다.당..
조선 최고의 킹메이커 원경왕후 민씨: 건국의 주역인가, 가문의 희생양인가?조선 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강렬한 에너지를 가졌던 여성을 꼽으라면 단연 원경왕후 민씨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태종 이방원의 부인이자 세종대왕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스스로의 지략과 담력으로 남편을 왕좌에 앉힌 진정한 '킹메이커'였습니다.오늘은 권력의 정점을 향해 함께 달렸으나, 승리의 순간 가장 처절하게 대립해야 했던 조선 최고의 여걸, 원경왕후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재조명해 봅니다. 1. 준비된 전략가 , 이방원을 왕으로 설계하다 원경왕후 민씨는 고려의 명문가인 여흥 민씨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명문가의 규수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조선 건국 초기, 이방원이 정도전 세력에 밀려 위기에 처했을 때 판을 뒤집..
15세에 국모가 된 소녀, 조선의 운명을 틀어쥐다: 정순왕후 김씨의 권력과 비극조선 왕실사에서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졌던 여성 정치인을 꼽으라면 단연 정순왕후 김씨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66세의 영조와 혼인한 15세의 어린 소녀가 어떻게 훗날 조선의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피의 숙청을 단행할 수 있었을까요?오늘은 '조선의 신데렐라'로 시작해 '냉혹한 통치자'로 기록된 정순왕후의 드라마틱한 생애와 그 이면의 정치적 투쟁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1. 51살의 나이 차를 뛰어넘은 영민함과 담대함 1759년, 조선은 15세 소녀의 중전 간택 소식으로 술렁였습니다. 상대는 무려 51살 연상인 66세의 영조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순왕후는 나이 차이에 주눅 들지 않는 비범한 인물이었습니다.간택 시험 당시,..
노비에서 정일품 빈까지, 조선판 신데렐라 '신빈 김씨'의 소리 없는 기적조선 왕실의 후궁이라고 하면 흔히 화려한 권력 다툼이나 투기, 혹은 비극적인 최후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세종대왕의 곁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천민 노비 출신으로 시작해 내명부 최고의 자리인 정일품 신빈(愼嬪)까지 오른 신빈 김씨입니다.오늘은 권모술수가 아닌 '성실함' 하나로 신분의 벽을 허물고, 왕실 모두의 존경을 받았던 그녀의 드라마틱한 일대기를 들여다보겠습니다. 1. 낮은 곳에서 핀 꽃: 공노비에서 국녀가 되다신빈 김씨의 시작은 미미했습니다. 본래 관청의 물품을 관리하는 내자시 소속의 공노비였던 그녀는 13세라는 어린 나이에 궁궐에 들어왔습니다. 신분제의 벽이 엄격했던 조선에서 노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