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을 다시 만난다면 당신 은 무슨 말을 하고 싶나요?"
작가 소개 ( いぬじゅん)
일본 출신의 이누준은 작은 무인역과 노을 기차라는 환상적 공간을 배경으로, 상실과 치유, 기다림과 재회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감성 소설가입니다. 그의 대표작들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마지막 한마디’라는 테마 아래,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리움과 후회를 길어올리는 문장들로 독자의 가슴을 울려왔습니다. 이번 작품 『무인역에서 널 기다리고 있어』도 그러한 작가의 색채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역자 이은혜는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통번역 전문가로 전향해 일본문학을 한국어로 옮기는 데 탁월한 감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 속으로
*** 아야카는 붉은부리갈매기를 닮았다. 이 좁은 마을에 서 답답한 일상을 보내는 나와 달리 좁은 세상에서도 자유롭게 산다. 그래서 불안했다.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지만 언젠가 내 곁에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이건 비밀인데….”
집게손가락으로 안경을 추켜올린 아야카가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
“어젯밤에 하마마쓰역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 갔거든. 그때 우리 아빠가 지갑을 주우셨어.”
“지갑?”
*** “그러면서 여긴 왜 온 거야? 정말이지, 요즘 너…, 너무 이상해.”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학교에 오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갑자기 화를 내거나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아야카가… 정말이지 이상하다.
“하, 또 시작이네.”
아야카가 창문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이러다 그 애가 정말 어디론가 멀리 가 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나는 그대로 고개를 떨궜다.
그때였다. 손으로 턱을 괴고 창밖을 보던 아야카가 툭 던지듯이 말했다.
“엄마가 죽었대.”
*** “일 분 세기 게임이야. 숫자를 다 셀 때까지 절대 눈을 뜨면 안 돼.”
“무서워.”
“뭐가 무서워. 일 분 후에 눈을 뜨면 선물이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면 감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을 감았다.
“1, 2….”
소리 내어 숫자를 셌다. 깜깜한 암흑 속에서 조금 전 다쿠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좋아하는 사람과 커플이 되다니, 볼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벅차 터질 것 같았다.
“60!”
하지만 마지막 숫자를 외친 후에도 다쿠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제 눈 떠도 돼?”
물어봐도 바람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다쿠미?”
눈을 떴을 때 그 애는 없었다.
*** “슨자역이라면 덴류하마나코선이죠? 고향이 하마마쓰라는 건 들었는데 슨자역 근처였군요.”
“맞아, 그건 왜?”
“저도 슨자역에 데려가 주세요.”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어이가 없어 물었지만,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방금 자신이 한 말을 반추하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급변한 분위기에 난감해하고 있는데 그가 결심을 굳혔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절 데려가 주시면 다시 한번 다쿠미 씨를 만나게 해 드릴게요.”
*** 레이코가 내 두 손을 꽉 잡고 버럭 소리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너는 항상 거짓말만 해. 진짜 마음은 얘기하지 않잖아. 슈지 일만이 아니야. 우리가 아무리 친해지려고 해도 적당히 거리를 두려고만 하고.”
“그렇지… 않아.”
아니라며 눈을 동그랗게 떠도 레이코는 고개를 저으며 내 말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레이코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어째서 이 애가 우는 걸까?
“우리가 억지로 밀어붙였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제대로 말할 기회는 줘야지.”
“말….”
몸집을 불린 불편한 감정들이 입 밖으로 와르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말을 삼켰다.
*** 천천히 눈을 뜨자 조금 전보다 더 붉어진 하늘과 어두워진 호수가 보였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미우라 씨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언덕 위 나무들이 만든 녹색 터널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금빛으로 둘러싸인 열차가 나타났다. 잠시 후 석양을 받아 눈부실 정도로 환한 빛을 내는 열차가 천천히 승강장에 멈춰 섰다.
“노을 열차….”
목소리가 바람결에 흩어졌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다음으로 가죽 구두를 신은 발이 눈에 들어왔다. 저 구두는….
*** 또 한 번 찬바람이 휑하니 지나갔다. 나는 수도 없이 읽었던 작은 쪽지를 꺼내 다시 펼쳤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덴류하마나코 철도 슨자역 근처에 있는 산마리노에 갈 것. 점심쯤에는 도착해야 함.」
단정한 글씨로 쓰인 그녀의 메모를 손가락으로 덧그려 봤다.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 왔다. 수도 없이 반복되어 익숙해진 감각이고 앞으로도 계속 나를 괴롭힐 고통이다.
*** 수도꼭지를 비틀자 손으로 물이 쏟아졌다. 시리게 차가운 감촉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숙제 열심히 해 줘서 고마워. 당신은 몰랐겠지만 당신, 현실을 제대로 마주했어.”
“그랬을까?”
“나를 다시 이 집으로 데려왔잖아. 나, 솔직히 포기했었거든. 그런데 당신이 가자고 고집부려 줘서 기뻤어. 당신은 이제 강해졌어. 정말 고마워.”
물을 더 세게 틀었더니 시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여보, 나는 강해지지 않았어. 당신 입에서 나온 떠난다는 말 한마디에 이렇게 벌벌 떨고 있는걸. 정말 강해졌다면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 “배가 아파.”
어느 날 아침, 요타가 말했다.
싫다고 칭얼거리는 아이를 설득해서 병원에 갔던 날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검사까지 했지만, 원인은 찾지 못하고 정장제만 처방받아 다시 버스를 탔다.
“엄마, 걱정 끼쳐서 미안해.”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는 아이가 가여워서, 몇 번이고 괜찮다고 말해 주면서 등을 토닥였다.
“빨리 나아서 학교 가야지.”
나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날이 시작이었다. 그날부터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 늘어만 갔다.
*** “기억나? 일 학년 운동회 계주 경기에서 일 등 했던 일. 그거랑 똑같은 거야. 너는 엄마, 아빠보다 먼저 결승선에 도착한 거야.”
이를 악물고 입꼬리를 올렸다. 사람들에게 보이던 가식적인 미소가 아니다. 내 아이를 위해, 앞으로 살아갈 나를 위해 진심으로 웃고 싶었다.
“그러니까 엄마랑 아빠도 언젠가 결승선에 도착할 거야.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지?”
울음을 꾹 참는 요타의 얼굴을 바라봤다. 내 마음이 요타의 마음에 가닿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 핵심 줄거리 요약
이 소설은 ‘노을 열차’라는 신비로운 전설이 깃든 작은 무인역 플랫폼을 배경으로, 여섯 명의 인물이 각기 다른 상실과 그리움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칩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친구를 교통사고로 잃은 소녀는 늘 그 친구가 기다리던 무인역 플랫폼에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과거에 건네지 못했던 말을 머릿속에 새긴 채, 붉게 저무는 하늘 아래 ‘노을 열차’를 기다립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첫사랑을 떠나보낸 여인이 도쿄에서 시간을 멈춘 채 살아가고, 고향의 무인역에서 노을 기차가 나타났을 때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오랜 세월 약혼자를 잃고 손주까지 둔 노년의 여인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기적’을 마주하는 장면을 통해, 과거와 화해하고 삶을 다시 이어 가는 용기를 얻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아버지를 잃은 소녀, 병으로 아내를 떠나보낸 남편, 그리고 아들을 잃은 어머니 등 각각의 상처가 교차하며 이야기들은 이어집니다. 노을 기차 앞 찰나의 재회는 그리운 이를 향한 마지막 말이 남은 자와 떠난 자 모두에게 얼마나 비밀스럽고도 절실한 위로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결국 이 책은 “그리운 사람을 다시 만난다면 당신은 무슨 말을 하고 싶나요?”라는 질문을 우리 마음 깊숙이 던지며, 떠난 이를 기억하는 방식이 삶을 다시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 비평
이누준의 『무인역에서 널 기다리고 있어』는 상실의 감정을 단순한 눈물샘 자극에 머물게 하지 않고, 재회와 위로의 가능성으로 전환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작가는 노을 기차라는 환상적 장치를 통해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서 상실을 응시하게 하고, 독자가 그리움이라는 감정 속에서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게 만듭니다.
그 강점은 “보편적 상실”을 다양한 인물의 삶으로 구현했다는 데 있습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별, 부재, 갈등이 여섯 개의 이야기로 펼쳐지고, 그 안에 담긴 감정선은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결국에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됩니다. 독자는 친구, 연인, 부모, 자식 중 하나의 얼굴을 떠올리며 감정이입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작품은 찬사만으로도 충분치 않습니다. 감성소설 특유의 감정 과잉과 환상 장치의 편리함이 독자에 따라서는 현실 도피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노을 기차’라는 전설적 설정이 감정의 무게를 덜어주는 동시에 때로는 현실적 무게를 덜어내는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상처의 치유보다는 위로의 판타지로 머무를 위험도 존재합니다.
또한, 여섯 개의 이야기 각각이 상실과 재회라는 구조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다 보니 이야기가 다소 반복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며, 독자가 깊이 있는 서사적 전환이나 새로운 구조적 실험을 기대했다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마음속 그리움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진지한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이와 떠난 이 사이의 마지막 대화는 결국 지금을 살아내는 유일한 방식으로 제시됩니다. 이 작품을 덮은 뒤 독자는 어쩌면 이렇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나도 아직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이 더 이상 무력이 아닌 살아가는 힘으로 바뀌기를 바랍니다.
- “그리운 사람을 다시 만날 단 한 번의 기차 — 그 플랫폼에 당신은 서 있을까?”
- “노을이 물든 플랫폼,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그대 마음속 한마디.”
- “잃어버린 말이 있다면, 여기서 다시 꺼내보라 — 『무인역에서 널 기다리고 있어』”
- “상실은 끝이 아니다. 기다림이 기적이 되는 순간, 삶이 다시 열린다.”
- “당신의 마음에 머물러 있는 그리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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