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김의 원조 논쟁, 기록과 사료로 본 사실 정리
최근 해외 토크쇼에서 제기된 ‘김의 원조는 어디인가’라는 논쟁은 단순한 문화 논쟁을 넘어 역사 기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이 글은 주장이나 감정이 아닌, 문헌·사료·공식 지정 사실만을 기준으로 한국 김의 기원 논쟁을 정리한다.

논쟁의 발단: 중국 측 주장 요약
중국인 패널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송나라 시대 문헌에 해조류 식용 기록이 존재
- 이를 근거로 김의 기원이 중국이라고 주장
- 한국의 김 양식 기술은 중국에서 전래되었다는 해석
그러나 이 주장은 ‘해조류를 먹었다’는 기록과 ‘체계적인 김 양식 기술’을 구분하지 않은 데서 사실 관계의 오류가 발생한다.

핵심 구분 ① 채취와 ‘양식’은 다르다
역사적으로 해안 지역에서 자연 해조류를 채취해 먹은 사례는 동아시아 전반에 존재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김 산업’의 핵심은 자연 채취가 아니라 인위적·반복적·재현 가능한 양식 기술이다.
이 지점에서 사료가 명확히 갈린다.

김 양식의 기원과 17세기 조선
한국 김 양식의 기원은 17세기 조선으로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조선 인조 시대, 의병장이었던 김여익은 전라남도 광양 태인도 인근에서 대나무 발을 바다에 설치해 김이 부착·성장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체계적으로 고안했다.
이는 세계 최초로 기록된 재현 가능한 김 양식 시스템이다.

사료 근거 ① 『조선왕조실록』 기록
김여익의 양식법과 관련된 내용은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김’이라는 명칭의 기원이다.
- 김여익이 양식법을 창안한 이후
- 인조 임금이 그 공을 기려
- 해조류를 ‘김(金/金)’이라 부르게 했다는 기록
이는 특정 인물과 기술, 명칭이 하나의 역사 기록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사료 근거 ② 공식 기념물 지정
현재 전라남도 광양에는 ‘김 시식지(김 양식 발상지)’가 공식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는 학계 검토와 문화재 행정 절차를 거쳐 대한민국 차원에서 김 양식의 발상지로 인정된 공간이다.
국가 단위의 공식 지정은 단순한 지역 주장과는 성격이 다르다.

중국 주장에 대한 사실적 정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중국에 해조류 식용 기록은 존재 → 사실
- 그러나 김의 ‘양식 기술’에 대한 기록은 없음
- 김여익의 체계적 양식법은 17세기 조선 기록으로 확인
- 명칭·기술·지역이 모두 사료로 연결됨
따라서 ‘김을 먹었다’와 ‘김 양식을 창안했다’는 전혀 다른 문제다.

국제 논쟁에서 중요한 기준
식문화의 기원을 논할 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은 다음 세 가지다.
- 재현 가능한 기술의 존재
- 문헌 사료의 명확성
- 국가 또는 공인 기관의 공식 인정
이 세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쪽은 현재까지 한국의 김 양식뿐이다.

필자의 견해: 감정이 아닌 기록의 문제
개인적으로 이 논쟁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감정이 사실을 앞지르는 장면이다.
역사는 주장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록으로만 정리된다.
한국 김의 기원은 민족 감정이 아니라 문헌·기술·행정 기록으로 이미 정리된 사안이다.
오히려 이 논쟁은 우리가 스스로의 기록을 얼마나 정확히 알고, 차분히 설명할 수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마무리
김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다. 하나의 산업이며, 기술이고, 역사다.
한국 김의 원조 논쟁은 승패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을 정확히 구분하는 문제다.
기록이 있는 쪽이 역사다. 그리고 김 양식의 기록은 분명히 17세기 조선에 있다.
'깊이가 있는 이야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타지마할 — 사랑을 대리하는 대리석의 시" (0) | 2026.01.14 |
|---|---|
| "눈 오는 날, 세상은 왜 갑자기 조용해질까" (0) | 2026.01.11 |
| "피라미드 — 영원의 형식을 따라 지은 집" (1) | 2025.12.29 |
| "목숨 걸고 논다!" 세계의 위험천만한 축제 🎉 (0) | 2025.12.22 |
| "왜 이런 걸 전시해?" 세계의 이색 박물관 🏛️ (0) | 2025.12.2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