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 — 철골 구조가 세운 근대의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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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하늘 위에 서 있는 시대의 상징물, 에펠탑.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파리와 동일시하지만, 처음 이 철의 탑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냉혹했다. “도시의 미관을 파괴하는 흉물”, “예술에 대한 모욕.” 비난은 거셌고, 조롱은 공개적이었다.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만국박람회를 위해 세워진 이 구조물은 전통적인 미의 기준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었다. 돌과 대리석 대신 철, 장식 대신 노출된 구조. 당시 파리 시민들에게 에펠탑은 아름다움이 아닌 질문이었다. 과연 기술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기능은 감동을 줄 수 있는가.

 

 

엘펠탑

 

 

그 질문의 한가운데에 서 있던 인물이 바로 **귀스타브 에펠**이다. 그는 미학적 변명보다 공학적 확신을 택했다. 바람을 흘려보내는 격자 구조, 하중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철골, 계산과 실험으로 증명된 안정성. 에펠탑은 숨기지 않는다. 버티는 방식조차 공개한다. 그래서 이 탑은 거짓이 없다.

시간은 이 구조물의 가장 강력한 변호인이었다.
처음엔 낯설었으나, 점차 사람들은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저 철의 선들이 만들어내는 리듬, 위로 갈수록 가벼워지는 곡선, 하늘과 맞닿을수록 투명해지는 실루엣. 에펠탑은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공기처럼 파리의 하늘에 스며들었다.

해 질 무렵, 노을이 철골 사이를 통과할 때 에펠탑은 더 이상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가 남긴 선언문이다. “기술은 인간의 감정을 배제하지 않는다.” 산업혁명의 소음과 연기 속에서 태어난 이 탑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시적인 풍경이 되었다.

 

 

파리의 상징

 

 

한때는 철거 대상이었던 이 탑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상징적이다. 통신 안테나, 과학 실험, 관측의 거점. 에펠탑은 스스로를 쓸모로 증명했다. 장식보다 기능이 먼저였고, 기능은 결국 새로운 아름다움이 되었다. 이것은 근대가 우리에게 남긴 중요한 교훈이다. 아름다움은 처음부터 인정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오늘날 에펠탑은 사랑의 배경이 되고, 약속의 좌표가 되며, 파리를 기억하는 방식이 되었다. 하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도전이었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질문이었고, 미래를 향한 실험이었다.

 

 

엘펠탑 의 야경

 

 

에펠탑 앞에 서면 우리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익숙함 속의 용기, 성공 뒤에 숨은 비난의 시간. 그리고 깨닫는다. 지금은 아름답게 보이는 것들 역시, 처음엔 모두 낯설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파리의 하늘 위에 서 있는 이 철의 탑은 오늘도 말없이 증명한다.
시대를 앞선다는 것은, 한동안 오해받을 각오를 하는 일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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