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평에 3억 원.
숫자로 적으면 담담해 보이지만, 이 문장을 입에 올리는 순간 공기는 무거워진다. 평(坪)은 원래 사람이 몸을 눕히고 숨을 고르던 최소한의 공간을 뜻했다.
그런데 그 한 평이 이제는 중산층의 생애 전체를 압축한 가격표가 되었다. 이 장면을 두고 “시장 논리”라는 말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서울 아파트 가격은 더 이상 주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계급을 가르는 언어이자, 다음 세대의 이동성을 봉쇄하는 장치가 되었다.
월급을 모아 집을 산다는 전통적 경로는 이미 신화에 가깝다.
노동 소득이 아니라 자산을 보유했는지 여부가 미래를 결정한다. 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가지고 있느냐로 인간의 가능성을 가른다.
물론 수요와 공급을 말하는 목소리는 늘 있다.
땅은 한정돼 있고, 서울은 과밀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왜 모든 기회—일자리, 교육, 문화, 의료—가 서울이라는 좌표에 묶였는가. 정책은 분산을 말했지만, 실제 선택은 늘 집중을 강화했다. 그 결과 주거는 희소재가 아니라 권력의 증표가 되었다.
한 평 3억이라는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여기까지는 너의 몫이 아니다”라는 무언의 통지서다.
청년은 대출 계산기를 먼저 배우고, 부모의 자산은 자녀의 출발선이 된다.
노력의 윤리는 남아 있으나, 보상은 점점 혈연과 시간에 종속된다. 이 구조에서 “열심히 살면 된다”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회피다.
더 심각한 것은 사회의 감각이 무뎌진다는 점이다. 한 평 3억이 ‘비싸다’에서 ‘그럴 수 있다’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질문을 잃는다. 질문을 잃은 사회는 조정 능력을 상실한다. 시장이 아니라 정치와 제도의 책임이 사라지는 지점이다.
집값은 떨어질 수도, 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주거가 인간의 존엄을 침식하는 구조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 서울 아파트 한 평 3억—이 말이 말이 되는 사회라면, 그 다음 문장은 분명 이렇다. “그 사회는 오래 가지 못한다.”
가격이 아니라 삶을 기준으로 도시를 다시 설계해야 할 시간이다.

“서울 아파트 한 평 3억,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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