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 중도방죽 가을이 머무는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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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 벌교 중도방죽 — 강과 사람, 그리고 시간의 이야기 🌾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는 한 폭의 풍경화처럼 고요히 누워 있는 중도방죽이 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저수지가 아닙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마을 사람들의 삶과 희로애락이 녹아든 남도의 심장 같은 물길입니다.

 

 

방죽은 1930년대 초, 농사를 짓던 이들이 비가 오지 않아 논이 메마르자 한 삽 한 삽 흙을 퍼 나르며 만든 곳이라고 합니다.
그때부터 이 물줄기는 들판의 생명을 지켜왔고, 사람들의 꿈을 품어왔습니다.
가뭄이 들면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이곳으로 달려와 하늘을 올려다보며 비를 빌었고, 장맛비가 쏟아져 방죽이 넘칠 때면 모두가 손뼉을 치며 춤을 췄습니다.

 


그 물은 단지 논을 적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희망을 적셨던 물이었습니다.

봄이면 중도방죽 주변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바람에 꽃잎이 물 위로 흩날립니다.
그 장면은 마치 세월의 편지를 연못 위에 띄워 보내는 듯합니다.
여름엔 방죽을 감싼 버드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고요한 수면 위로 하얀 구름이 떠다닙니다.
어린 시절, 마을 아이들은 이곳에서 손으로 물고기를 잡고, 개구리를 쫓으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 시절의 웃음소리는 아직도 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듯합니다.

 

 

가을이면 억새와 갈대가 방죽을 감싸고, 하늘은 한없이 높아집니다.
노을이 질 무렵, 방죽 위로 떨어지는 햇살은 금빛 물결을 만들고, 그 위를 날아가는 새 한 마리가 길게 그림자를 남깁니다.
그 순간, 세상은 잠시 멈춘 듯 고요해지고, 사람들은 무심히 “참 좋다”는 한마디를 남깁니다.
그 짧은 말이 이곳의 모든 아름다움을 대신합니다.

 

 

겨울의 중도방죽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얼음이 살얼음처럼 얇게 깔리고, 들녘은 하얀 서리로 뒤덮입니다.
그러나 그 차가움 속에서도, 방죽은 여전히 봄을 준비하는 생명의 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위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은 얼음을 녹이며 이렇게 속삭이는 듯합니다.
“겨울이 지나면, 다시 피어날 것이다.”

 

 

 

중도방죽에는 이런 전설도 전해집니다.
옛날 마을의 한 노인은 가뭄이 극심하던 해에 마을의 안녕을 빌며 자신의 벼를 모두 베어 방죽 공사에 보탰다고 합니다.
그의 희생 덕분에 방죽은 완성되었고, 이후 마을은 한 번도 큰 가뭄으로 고통받지 않았다고 하지요.
그래서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이 방죽을 **“노인의 땀으로 지은 호수”**라 부릅니다.

 

오늘날 중도방죽은 벌교의 대표 명소이자 생태 관광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산책로와 벤치, 그리고 작은 정자가 물가를 따라 이어지며,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그 위에 남깁니다.
누군가는 추억을, 누군가는 사랑을, 또 누군가는 잃어버린 마음의 평화를 되찾습니다.

바람이 물결을 어루만지고, 그 물결이 다시 하늘을 비추는 곳.
보성 벌교 중도방죽은 오늘도 말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고요한 물 위에는 세월의 기억과 인간의 온기, 그리고 자연의 숨결이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풍경은 우리에게 조용히 속삭입니다.

 

“모든 것은 흘러가지만, 진심은 여기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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