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 해외자산 수시 처분 결정에 부쳐
최근 고환율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우리 경제 전반에 깊은 주름이 패고 있다. 수입 물가는 치솟고 기업들의 경영 환경은 불투명해졌다. 이런 시기에 23일 들려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결정은 시장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국민연금이 환율 상황에 따라 해외자산을 수시로 처분하여 외환시장에 달러를 공급하는, 이른바 '전술적 환헤지' 비율을 상향하고 운용 방식을 유연화하기로 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민들의 노후 자금인 연금이 외환 방어의 수단으로 동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결정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는 단순히 환율 방어만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국민연금의 수익률 제고와 국가 경제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고도의 투자 전략임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번 국민연금의 결정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그 이유를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고점 매도'를 통한 확실한 차익 실현 기회다.
투자의 기본은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것'이다. 현재 원/달러 환율이 높다는 것은(원화 가치 하락), 국민연금이 보유한 해외 주식이나 채권의 원화 환산 가치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이다. 즉, 환율이 높을 때 해외자산을 팔아 달러를 원화로 바꾸면 막대한 환차익을 확정 지을 수 있다. 과거처럼 기계적인 자산 배분 비율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보유하거나, 환율 변동을 무시한 채 운용하는 것은 오히려 수익을 낼 기회를 발로 차는 것과 같다. 환율이 급등했을 때 자산을 매각하여 이익을 실현하고, 추후 환율이 안정되었을 때 다시 해외 우량 자산을 매입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영리한 트레이딩 전략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금 고갈 우려를 덜어내는 수익률 방어기제가 될 것이다.
둘째, 외환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통한 거시경제 안정화다.
국민연금은 이제 단순한 연기금을 넘어, 국내 자본시장의 거대 공룡이자 '큰손'이다. 국민연금의 행보 하나하나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환율이 요동칠 때 국민연금이 보유한 막대한 달러를 적절히 시장에 풀어준다면, 외환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고 급격한 쏠림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 혹자는 "수익률만 신경 써야지 왜 환율까지 신경 쓰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대한민국 경제라는 토양 위에서 자란다. 환율 폭등으로 인해 국내 기업들이 무너지고 물가가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국가 경제가 침체하면, 결국 국민연금이 투자하고 있는 국내 자산의 가치도 동반 추락할 수밖에 없다. 거시경제의 안정은 곧 국민연금 장기 수익률의 토대가 된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시장 안정화를 통해 연금의 장기적 가치를 지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셋째, 경직된 운용에서 벗어나 '유연성'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거대해진 규모 탓에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해진 목표 비중을 맞추기 위해 환율이 오르든 내리든 기계적으로 달러를 사들이는 행태가 오히려 환율 상승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번에 '외환보유액 부족 등 외환시장 위기 시'라는 단서 조항을 달고 전술적 헤지 비율을 확대한 것은, 급변하는 글로벌 금융 환경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상황에 따라 달러를 팔 수도, 살 수도 있는 '전략적 모호성'과 '유연함'은 국제 투기 세력에게도 경계심을 주어 시장을 방어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운용이 정부의 인위적인 환율 개입 수단으로만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계심은 늦추지 말아야 한다. 자산 배분의 원칙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보장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복합 위기 상황에서, 1,000조 원에 육박하는 기금을 가진 국민연금이 뒷짐만 지고 있는 것은 직무 유기다.
결론적으로 국민연금의 해외자산 수시 처분 결정은 '국익'과 '수익'이 충돌하는 지점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시너지를 내는 교집합이다. 환율이 높을 때 이익을 실현해 곳간을 채우고, 동시에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는 이번 전략은 매우 시의적절했다.
국민연금이 이번 전략을 통해 '스마트한 투자자'이자 '든든한 경제 버팀목'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길 기대한다. 유연하고 민첩한 대응이야말로 불확실성의 시대를 건너는 가장 확실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이 국민들의 소중한 노후 자금을 불리고,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을 지키는 성공적인 선례로 남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