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George F. Han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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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울린 찬미의 불꽃 — 헨델, 신과 인간 사이의 음악

 

 

1685년 2월 23일, 독일 할레의 겨울 새벽. 한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그의 아버지는 외과 의사였고, 음악을 하찮게 여겼다. 그러나 어린 헨델은 조용히 하프시코드를 치며, 세상의 모든 소리를 귀로 그려내는 아이였다. 그에게 음악은 놀이가 아니라, 운명이었다.

 

 

아버지는 그가 법률가가 되길 원했지만, 헨델의 마음은 이미 신의 음성에 붙잡혀 있었다. 그는 몰래 다락방에 하프시코드를 숨겨 두고, 촛불이 꺼질 때까지 건반을 두드렸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아이의 손끝에서 천사가 노래한다"고 말했다. 결국 그의 재능은 억누를 수 없었다.

 

 

성장한 헨델은 독일을 떠나 이탈리아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오페라의 열정과 인간의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예술을 배웠다. 로마의 교회, 피렌체의 정원, 베네치아의 극장에서 그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흡수했다. 그러나 그는 단지 감정의 음악가로 머물지 않았다.
그의 음악에는 신의 영광과 인간의 환희가 함께 울렸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간 헨델은 런던의 예술계에서 ‘거대한 음의 건축가’로 불렸다. 그는 궁정의 사랑을 받으며 수많은 오페라와 협주곡을 쏟아냈지만, 어느 순간 세속의 화려함에 회의를 느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진실한 감동을 원하지 않았다. 화려한 무대와 겉모습이 음악을 덮고 있었다.

 

 

 

그 무렵, 헨델은 병으로 쓰러졌다. 손가락이 굳고, 마음은 지쳐 있었다. 그러나 그때, 한 친구가 그에게 성경의 구절을 바탕으로 한 오라토리오 대본을 건넸다.
그 제목은 “메시아(Messiah)”.
헨델은 대본을 펼치는 순간, 마치 하늘의 문이 열리는 듯한 영감을 받았다.

그는 단 24일 만에 《메시아》를 완성했다.
한 줄의 쉼 없이, 눈물과 기도로, 신과의 대화처럼 써 내려갔다.
“할렐루야”의 첫 화음이 울릴 때, 그의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헨델은 말했다.

나는 천국의 문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신이 앉아 계신 왕좌를 보았다.”

 

 

 

 

1742년, 더블린에서 처음 연주된 《메시아》는 청중 모두를 무릎 꿇게 했다.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서 있었다. 음악은 인간의 언어를 초월했고, 신의 존재가 음악 속에서 살아 있었다.

그의 또 다른 명작, **《수상 음악(Water Music)》**은 전혀 다른 성격을 지녔다.
테임즈 강 위, 왕의 배행렬이 밤하늘을 가를 때, 헨델의 음악이 강 위로 울려 퍼졌다.
금빛 불빛이 물결에 반사되고, 음악은 물 위에서 춤을 추듯 흘렀다.
그 곡은 신에게 바치는 찬미가 아니라, 인간의 기쁨과 자유를 노래하는 찬가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왕궁의 불꽃놀이(Music for the Royal Fireworks)》.
불꽃이 하늘을 수놓고, 그 아래에서 음악이 폭발하듯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불꽃은 단지 축제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헨델이 평생을 걸쳐 만들어낸 하나의 선언이었다 —

“음악은 인간의 영혼이 하늘에 닿는 유일한 다리다.”

 

1759년, 헨델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마지막 말은 짧았지만, 그의 삶을 모두 담고 있었다.

“주여, 당신께 음악을 바칩니다.”

 

그리고 그가 떠난 뒤에도,
《메시아》의 “할렐루야”는 여전히 세상을 깨운다.
그의 음악은 불꽃처럼, 지금도 하늘을 향해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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